아무래도 이번엔 작가 이야기 먼저.
기안84. 이름도 특이한 이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그가 ‘나 혼자 산다’에 첫 등장했을 때부터였다.
‘나 혼자 산다’는 사실 지금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예전만큼 즐겨보진 않는다.
아니, 안 본 지 오래.
혼자 사는 사람들의 싱글 라이프를 이야기하던 방송이 어느새 동아리 아이들의 일상을 보는 것으로 변질되어 버렸기에 뭔가 ‘남의 친구 무리’를 보는 기분이 들곤 해서 더 이상 시청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혼자 사는 사람들이 함께 나와서 노는 장면도 필요하겠지만, 어느새 친목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되어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인 가구가 단순히 늘어나는 것을 넘어 대세가 되어버린 지금. 방송 초기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그들만의 꿀팁들도 사라진지 이미 오래...
그래서일까? 요즘 유튜브에 올라오는 예전 멤버들의 이야기는 반갑게 느껴진다. 유튜브 댓글에도 심심치 않게 나와 같은 의견들이 올라온다.
사람들 느끼는 거 비슷비슷하구먼.. 싶더라.
금요일 밤에 매주 챙겨 보던 프로그램을 안 본 지 거의 1년이 넘어가고, 이젠 그닥 궁금하지 않아졌다.
내가 무슨 얘기 하려고 했지? 아, 기안 ㅋㅋㅋ
그가 ‘나 혼자 산다’에 등장했을 때, 그 신선함을 잊을 수 없다. 얼마 전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다시금 깜놀.
웹툰 마감을 못해서....
회사 안에 잡혀 마감 전까지 거의 묶여서 일하는 장면이었는데... 보통 하루에 7컷 정도 그리는 그림을 하루 만에 40컷 그리면서 마감하는 모습은 왠지, 마감을 앞두고 달리는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괜히 내가 다 심장이 쫄깃.
게다가 집을 놔두고 회사에서 휴지를 베고 자는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이때가 벌써 2016년이라니.. 세월 정말 빠르다.
‘이 사람 뭐야?’
생전 처음 보는 캐릭터에 놀라 복학왕이란 만화를 보았지만... 내 스타일이 아닌 풍자들과 몇몇 장면들이 좀 불편하게 느껴져서 길게 보질 못했다.
복학왕 이전, 그가 이름을 알린 패션왕도 한창 화제가 되었을 때 한두 번 보았지만, 그 작품도 물론 나의 스타일은 아니었다. 네티즌이 분노했던 늑대 인간 씬도. 이리저리 짤로는 알고 있었지만 관심 무.
그냥, 특이한 만화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 혼자 산다’에서의 인간 기안84는 참 매력 있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나 혼자 산다를 보게 된 시기도 아마 그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의 이야기가 빠지면 섭섭할 정도로 챙겨 봤었다.
그런데... 캐릭터 적으로 재밌고 신선했지만, 신선한 것도 하루 이틀. 가끔 아슬아슬하게 선 넘는 그의 태도들이 처음엔 진솔해서 좋았는데 어느 순간 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대체 이 사람은 상식이 있는 건가?’, ‘배려심이란 게 있는 건가?’ 싶은 장면들이 계속되고... 경솔한 행동과 사과가 줄줄이 반복되면서 그에 대한 애정도 많이 식어갔다. 그리고 ‘나 혼자 산다’에 대한 애정도 사라졌다.
그런데...
결국,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인가.
그의 신작 <회춘>으로 사라졌던 애정이 한 번에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작가 이노톨 프랭스는 말했다
“내가 만약 신이라면
나는 청춘을 인생의 끝에 두었을 것이다”
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 청춘.
우리는 그 청춘을 너무 어렸을 때, 가볍게 지나쳐버린다. 인생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면 청춘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안정감과 절대 함께 있을 수 없던 시기인 청춘. 그 아쉬운 시기에 대해 기안은 놀라운 상상을 한다.
인간이 노년을 겪고 난 이후 회춘을 해서 생을 거꾸로 한 번 더 살게 된다는 세계관.
보통. 인간이 늙게 되면, 아이와 같아진다. 내 몸이 더 이상 내 몸이 아니고,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그 시기를 다시 아이의 시절로 돌아가는 것으로 표현한 기안에 놀라고 말았다.
누구나 한 번쯤 청춘을 더 살아보고 싶어 한다. 젊은 몸으로 한 번 더 살아볼 수 있다는 것. 상상만으로도 정말 엄청난 일이 아닌가!
첫 청춘이 치기 어림과 불안정으로 점철된 시기였다면
두 번째 청춘은 안정과 성숙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 이야기가 재미있을 리가 없지.
웹툰 <회춘>은 한 가족의 구성원 (feat. 교장)의 회춘 전과 회춘 후의 흐름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각 에피소드마다 뾰족한 주제들과 표현들로 등장인물의 삶을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좋은 편에 속한다. 그중 개인적으로 엄마의 에피소드는 참 좋았다.
그중 이 장면이 오늘의 한 장면 되시겠다....
자신이 살고 싶은 삶.
원하는 것들을 할 수 있는 삶으로 비유된 네일아트.
결혼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친구와의 하루 동안의 일탈. 엄마로서의 인생만을 살아왔던 주인공이 그동안 한 번도 못했던 네일을 하게 되는데...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와 네일아트를 잘라내 버리는 이 장면은 결국 한 인간의 삶보다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장면... 이렇게 가족을 위해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했던 엄마는 회춘하게 된 이후 가족의 품을 떠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엄마의 회춘과 청춘시기를 그린 에피소를 통해 그녀의 인생과 선택을 독자에게 이해하게 만들었다.
<회춘>은 한 번 더 청춘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우리들에게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고 나면 생각이 많아지는 게 된다는...
난 후회가 많은 인간. 어찌 보면 나의 후회는 나의 목소리에 집중하지 못한 탓인지도 모른다. 사실, 아직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평생 모를지도 모르지...
그래도.
모든 이들은 삶이 아니라 죽음을 향해 간다고 생각하던 나였지만, 죽음을 향해가는 지금도 결국 삶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지금.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작은 기대를 해본다.
기안84에게 이 이상의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가는 생에 한 번쯤 작두를 타게 되는 시기가 올 수 있다고 하는데, 기안에게 그 시기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오늘,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
그러고 보면 항상 원하는 것이 뭔지 생각은 했지만 제대로 내 속을 들여다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 생이 얼마나 남은 지도 모르는 상황 아닌가.
이미 청춘은 지났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오늘이 나의 청춘이니까.
'Story Recipe > 만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무 질질 끌면 안돼요!! 웹툰 <은주의 방> (0) | 2020.08.04 |
---|---|
소름 돋는 상상. 웹툰 <개 같은 세상> (0) | 2020.07.21 |
살아있는 캐릭터들의 향연 웹툰 <좀비딸> (0) | 2020.06.29 |
오랜만에 느껴본 긴장감. 웹툰 <4학년> (0) | 2020.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