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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Recipe/영화

세상에, 우리가 실험쥐였다. <소셜 딜레마 : The Social Dilemma>

by LifeRecipe 2020.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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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뜨거웠던 대선의 열기와 더불어 트위터의 인기도 한껏 치솟았다. 당시 나도 인기에 힘입어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다. 트위터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굉장히 재밌었다. 계속되는 피드와 공유에 공유에 공유. 글을 하나 올리면 실시간으로 계속 손가락을 슬롯머신 당기듯 화면 위로 내리며 피드를 업데이트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평소처럼 화면을 손가락을 튕기던 나는 소름이 돋았다. 글을 쓰고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내가 글을 쓴 지 몇 초가 몇 분이 흘렀는지가 상단에 떴는데... 그때, 내 시간이 이곳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기 때문.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며칠 후, 고민 끝에 나는 폰에서 트위터 어플을 지워버렸다. 더 이상 내 시간을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에.

 

넷플렉스 오리지널 다큐 <소셜 딜레마>에선 8년 전 내가 느낀 그 두려움이 실체 없는 두려움이 아니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포스터 잘 뽑은거 보소

 

 

누군가 내 시간을 빼앗고 있다.

지금껏 난 내가 선택해서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들의 조종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도 우린 조종 당하고 있다

 

 

<소셜 딜레마>는 미국 유명 IT 기업의 “Former” 설립자, 엔지니어, 마케터, 핵심 투자자 등의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로 진행이 된다. 이들의 용기 있는 고백과 뒷이야기들로 인해 그간 막연하게 두려워했던 그 무엇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다큐에 출연한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우리가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체가 아니라, 이용당하는 일종의 실험쥐와 다름이 없다고. 다수의 이용자들은 더 많은 광고를 보기 위해서, 더 많이 매체를 사용시키기 위해 그들이 만든 실험에 데이터를 주고 있는 실험쥐일지도 모른다고.

 

인터뷰이중 단연 눈에 띄었던 사람은 트리스탄.

 

 

 

 

그의 구글 재직 당시 에피소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술이 인간 중심의 기술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그는 그 기술을 만들어낸 회사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프레젠테이션으로 만들어 몇 명의 동료들에게 메일로 보낸다. 그리고 다음날, 대부분의 직원들 컴퓨터에 자신이 만든 프레젠테이션이 떠있는 것을 발견한다. 회사 내에서는 그의 목소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는 이 흐름이 문화적인 움직임이 될 것이라 예상하지만, 며칠이 지난 후 모든 것은 그 프레젠테이션을 쓰기 전의 상태로 돌아왔다고 한다. 아무런 변화는 없었다.

 

 

변화의 움직임은 어디로 갔을까?

 

 

현재 소수의 사람들이 수 억 명의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이들에게 적용되는 윤리적인 규정은 없다. 사회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인간들의 윤리규범은 아직도 기술이 발전하기 전에 머물러있는 것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알고리즘은 인간의 삶에 큰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꼭 긍정적인 효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이들이 만들어낸 비극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사회의 극단적 분열. 2011년도에 비해 지금은 사회의 좌우가 극렬하게 분열되어 있다. 왜냐? 자신들이 원하는 뉴스만 보기 때문이다. 모두, 이 알고리즘으로 인해. 한 사람의 성향에 맞춰 추천되는 영상과 피드들은 비슷한 내용일 수밖에 없다. 비슷한 것들이 노출되어 같은 이야기만 반복으로 듣다 보면 반대 의견은 다른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 된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극열하게 분열된 미국의 예는 꼭 미국의 경우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상황도 그다지 다르지 않으니까.

 

또 하나는 가짜 뉴스. 트위터에서 진짜 뉴스보다 가짜 뉴스가 퍼지는데 6배가 더 빠르다고 한다. 인터넷 세상에서의 속도는 정보의 장악과 다름이 없다.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보는 뉴스를 과연 믿을 수 있는가. 기본적인 팩트 체크도 안 하고 거짓말을 써대는 기자들과 그들 매체가 가진 정보의 파급력. 우리는 소셜 미디어뿐만 아니라 언론도 믿을 수 없는 상태라 할 말이 없긴 하다.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만을 선택해서 보는 것을 우리는 편리하다고 할지 몰라도, 그 안에는 정보의 한정이란 엄청난 오류가 있다. 그렇게 한정된 정보에 매몰되면, 극단으로 가게 되는 것. 아주 당연한 수순이다.

 

 

10대들의 우울증의 원인, 소셜미디어

 

 

다큐에서 한 인터뷰이는 말했다. 자신들이 좋아요 버튼을 만들 때는 세상에 긍정과 사랑을 퍼트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그 버튼이 10대 아이들의 우울의 원인이 될 거란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 수많은 소셜 미디어가 수억 명의 사람들의 인생을 휘젓고 있는데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트리스탄은 말한다.

 

“플랫폼이. 선거를 장악했다면 선거에 대해 책임이 있고, 아이들의 토요일 오전의 정신건강을 장악했다면, 토요일 오전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매우 공감하는 바.

 

사실, 모든 문제는 비즈니스 모델에 달려있다. 돈을 더 지불한 광고주를 위해 이용되는 사람들. 그들이 지불하는 돈은 너무 쉽게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선거도 이용할 수 있고, 한 사회의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지금 이 시스템이 불러일으킬 문제 중 제일 걱정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 인터뷰이는 ‘내전’이라고 말했다. 전혀 과장된 걱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시스템은 스스로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IT업계 내부에서의 자정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나의 시간을 잡아먹는 이런 어플들을 지우는 것뿐이지만, 이 또한 하나의 움직임이 될 수 있겠지.

 

이 다큐는 기본적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었기에 때깔이 좋다. 역시, 자본의 투입이 무섭군. 그리고 중간에 다큐 속 드라마가 출연하는데, 이 아이디어 또한 매우 좋았다고 본다.

 

 

다큐 속 드라마 구성은 참 괜찮은 시도였다

 

 

단순 재연이 아닌 다큐 속 드라마라... 보다 보면 두 개의 장르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에너지를 뿜어낸다. 다큐 안에 드라마가 투입이 되면, 재연과는 달리 객관성을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재연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을 드라마로 구성해 객관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극이 진행이 된다. 이야기 구성이나 대사도 유치하지 않아 좋았고, 배우들 연기도 괜찮았다. 시간이 좀 지나면 우리나라 다큐에서도 도입시킬 수 있는 그런 장치가 되리라.

 

 

인터뷰 자체로 큰 용기였다고 본다

 

 

잘 구성된 작품이다. 인터뷰에 나서 준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바. 이 다큐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난 영화가 끝나고 대부분의 어플의 알람을 끄고, 지웠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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