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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Recipe/영화

줄 없이 절벽을 오르는 미친 도전 <Free Solo>

by LifeRecipe 2020.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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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진심으로 심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아무 장비를 하지 않은 채, 산을 오르는 사람들. 프리 솔로를 했던 유명한 사람들의 과거 영상들을 보여주는데... 등반을 하던 남자가 발을 헛디뎌 추락하는 장면이 그대로 화면에 나왔다.

 

진짜 찐으로 놀랐다.

 

그가 추락하는 3-4초간 몸속에 들어온 숨을 뱉어낼 수가 없었다. 그의 몸이 바닥에 거의 닿을 무렵, 살짝 펴진 흰색 낙하산. 지상에서 카메라를 보고 웃어 보이는 등반가의 얼굴을 보자 살아서 다행이라기보다는 울컥 화가 올라왔다.

 

웃어? 웃음이 나오냐고요!!!!! ㅠㅠㅠㅠ

 

그 화도 잠시, 그렇게 산을 오르던 그도 몇 년 전 죽음을 맞이했다고 했다.

 

아니,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지?

 

<Free Solo>는 클라이머 알렉스 호놀드에 도전을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아찔한 요세미티 엘케피탄에 줄 없이, 맨손으로 오르는 그의 이야기이다. 상상이 되는가? 줄이 없다. 수직으로 깍인 날 선 절벽을 오르는데, 나를 잡아줄 줄이 없다.

 

상 줘라. 두 번 줘라.

아주 작은 크랙에 손을 밀어 넣고, 절벽이 만들어 놓은 아주 작은 굴곡에 발을 딛고, 튕겨내며 다음 스텝을 밟는다. 아주 작은 실수에도 목숨을 잃는다. 누군가 내게 억만금을 주며 해보라고 해도 절대 하지 않을 도전. 그런 말도 안 되는 도전을 알렉스는 하고 있었다.

 

줄이 없어!!! 진짜 아찔하다

 

보통 다큐엔 영화처럼 짜여진 플롯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연출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뿐이지 다큐에도 플롯이 있다. 예전, 나의 사수는 극을 쓰던 내가 다큐 촬영 구성안을 쓰는 것을 힘들어하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영화라고 생각해봐. 그럼 그 다음 장면은 뭔 거 같아?”

 

뒤통수를 세게 맞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있는 일을 찍으러 가는데 그곳에 어떤 상황이 있을지 어떻게 써? 내가 무당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모든 일엔 플롯이 존재한다. 그날 이후 구성안을 쓰는 것이 조금 편해졌다. 물론, 내가 쓴 대로만 현장이 흘러가진 않았지만 촬영된 이야기는 일정 플롯 안에서 또다시 재구성되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의 재구성. 살아있는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은 극을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짜릿한 일이기도 했다.

 

도전을 다루는 다큐의 경우 도전을 다루는 영화와 비슷한 구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엔 도전과 도전을 하는 이유를 밝히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좀 보여주고,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주인공을 드러낸다. 도전을 앞두고 부상이 있을 것이고, 포기할만한 사건을 겪지만, 그럼에도 도전! 그리고 성공. 영화로 이 이야기를 구성한다 치면 짜임새가 밀도 있지 않은 한 굉장히 진부한 영화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다큐 쪽으로 온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Free Solo>는 내가 언급한 모든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구성인데,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식상한 빌런 하나 없이 산을 오르는 그의 모습 하나로 오금이 저릴 정도니, 말 다했다. 자연이 최고의 빌런이 되는 건가? 이 작품은 다큐만이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조의 긴장감을 선사한다. 

 

줄 없이 등반하는 Free Soloing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알렉스는 조금 특이한 사람이다. 집이 아닌 캠핑카에서 살고, 사귀는 여자친구에겐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사람. 아직까진 여자친구보다 산이 중요한 사람. 대체 그는 어떤 멘탈을 가졌기에 프리 솔로에 저리 미쳐있는지 알아보려 MRI를 찍어 봤더니 그의 편도체는 움직임이 없었다고 한다.

 

움직임 1도 없음

 

보통의 자극엔 반응도 없는,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자극에 반응하는 사람이었던 것. 그가 프리 솔로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 부분에서 납득했다. 평범한 삶보다 성공 아니면 죽음인 도전을 선택하는 사람. 그 도전이 그에게 숨 쉬는 이유와 다르지 않아서 포기할 수 없는 사람. 

 

나는 치킨과 곱창을 좋아하지만, 그 둘을 못 먹는다고 죽진 않는다. 먹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 굉장히 슬프겠지만,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Free Solo는 삶 그 자체. 못하게 되는 것은 그에게 삶을 송두리째 빼앗는 것과 다름이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렇게 미쳐있을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그의 삶이 부러웠지만, 그의 삶을 하루라도 살아보고 싶진 않았다. 그냥, 치킨과 곱창을 원하는 삶. 그게 나에게 맞는 삶이다. 

 

난 그냥 그가 오르는 걸 보는 걸로 만족.

 

그의 요세미티를 향한 프리솔로는 성공했을까? 거기까진 밝히지 않겠다. 직접 봐야 한다. 그가 산을 타는 순간순간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순도의 100% 전율을 느낄 수 있기에.

 

다큐 초반에 방송 프로그램 MC는 그에게 묻는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죽을 수 있는 이 도전을 왜 하는 거냐고. 그는 말했다. 누구든 어느 순간이라도 죽을 수 있다고. 솔로잉을 하는 것은 그 순간에 즉각적으로 몰두하게 만든다고. 적어도 내가 하는 일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은 아니다. 삶을 걸고 하는 일도 아닌데 한번 정도는 미친 몰두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지금의 느슨한 삶이 너무 누추해 민망할 정도였으니.

 

 

어쩌면 미치도록 아름다운 자연이 최고의 빌런.

 

아직도, 맨몸으로 산을 오르는 그를 이해하진 못하겠다. 그저, 그의 도전을 존중할 뿐.

 

보통 사람들은 산에 오르는 것을 인생에 비유한다. 누군가는 정상에 오르는 것이 중요하고, 누군가는 산 밑의 맛 집을 가는 것에 더 무게를 두기도 한다. 누군가는 전투적으로, 누군가는 산책처럼 산을 오른다. 수만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산을 오르는 것처럼 수만 가지의 삶의 방식이 있다. 그 중 하나, 알렉스의 삶이 있다. 미치도록 멋지고 아름답지만 그저,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은 삶.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얼마 전에 또 프리 솔로잉을 했더라. 그의 도전은 대단하고 응원하지만, 그의 선배인 타미가 말했듯, 프리 솔로가 전부인 이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일반인의 삶을 권할 수 없지만, 안전하게 다니라고 해서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그가 항상 안전하길 바라는 바. 그가 끊임없는 도전을 하듯, 그만큼의 몰입도는 아녀도 나도 내 삶에 한번 정도는 몰입하겠노라 다짐했다.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Free Solo> 삶이 무료한 이에게 무조건 추천한다. 이 영화를 보면 깨닫게 된다. 무료할 틈이 없다, 인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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