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스포일러는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 이상하지.
내가 영상을 처음 시작했을 땐, 소위 말하는 화면의 때깔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카메라를 고르는데 신중했으며, 어느 카메라가 어떤 색을 표현하는지 중히 여기며 카메라를 고르는 것에 더 신경을 썼었다. 그런데 기술의 발달로 인해 화면의 때깔의 수준이 일정 부분 급상승하게 되면서 때깔 자체는 매우 좋아졌지만, 때깔만 좋은 것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요즘엔 오히려 예전 흐릿한 화면의 콘텐츠에 좀 더 눈이 가기도 한다. 결국 콘텐츠에서 중요한 건, 화면의 때깔보다는 그 화면이 담은 이야기.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는 친구에게 추천은 받았지만, 그닥 보고 싶지 않았던 영화였다. 일본 특유의 B급 감성을 좋아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포스터도 그닥 안 당겼다. 또... 좀비라니, 좀비라니...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후 내 모든 편견이 와장창 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제대로 미친 영화를 만난 것. 재기 발랄이란 단어를 영화로 만들었다면 바로 이 영화가 아닐까.
영화의 내용을 소개하기도 전에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다. 코미디를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좀비 영화의 촬영 중 감독과 배우들은 한 장면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 탓에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촬영 현장에 진짜 좀비 떼들이 나타난다! 감독은 진짜 좀비의 등장에 환호하며 아수라장이 된 현장이 진짜라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스태프들은 좀비와 감독을 피해 도망가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미친 듯이 빵 터졌던 순간은 바로 이 장면이었다.
진짜 좀비를 피해 도망가는 배우들을 쫓는 메인 카메라. (미친 감독도 카메라를 들고뛰니 헷갈림을 방지하기 위해 메인 카메라라고 하겠다) 렌즈에 피가 튀자 메인 카메라의 카메라맨이 주인공들을 쫓으며 렌즈를 휴지로 대충 닦아내고 달리는 장면이 있다. 이 영화가 갖는 코믹의 시작을 보여주는 아주 드라마틱한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서 이 영화가 단순한 구성이 아닌 극 중 극 구성임을 살짝 흘리는데, 그 연출이 매우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발 연기를 시전 하는 배우들과 미쳐가는 감독. 아... 겪었던 일이어서 그런지 남일 같지가 않았다지? 좀비는 창궐하지, 이게 진짜라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감독은 미쳤지.... 카메라를 절대 멈추면 안 되는 상황에서 영화는 30분 만에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컷.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가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이 영화는 방송국에서 스트리밍 방송을 기획으로 시작한 콘텐츠. 영화는 준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언제 우리의 삶이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던 적이 있었던 가. 주인공인 영화감독은 배우들과 방송국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서 치이고 또 치인다.
영화가 막상 시작되면서 더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배우가 안 나타나고, 주요 배역인 배우는 술을 마시고 뻗질 않나 아수라장이 된 촬영장에서 영화의 감독은 영화를 무사히 끝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달리는데... 배우가 없어? 그럼 그의 아내가 메꾸고, 그 다음엔 자기가 메꾸고. 주인공이 구멍에 구멍을 계속해서 연달아 막으며 이야기는 점점 다이나믹해진다.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우린 인생도 영화 촬영과 비슷하다는 것. 돌아보면 생각한 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고, 그 속에서 내가 멈춰버리면 내 영화는 멈춰버리겠지. 끊임없이 수습하고 수습하면서 이어나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지 않을까.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수습, 수습을 반복하는 인생이라도 결국 모두 잘 될 거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보석 같은 영화였다. 한국에도 이 같은 시도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작품.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매우! 매우! 추천하는 바. 요즘 같은 시기에 더더욱 볼만한 영화이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우리네 인생도 멈추면 안 된다 절대. Never.
p.s 포스터에 속지 마시라. 진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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