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와 전화를 하다 퀸덤 2 이야기를 하며 열변을 토하고 말았다. 함께 방송작가로 일했던 친구는 나의 열변에 꽤나 당황한 모양이었다.
헐, 니가
그렇게 아이돌에 관심 있는지 몰랐어
아이돌?
사실, 관심 없었다.
청소년 시절 그 흔한 HOT, 젝키 빠도 아니었고, SES, 핑클엔 관심도 없었다. 그 시절 나는 이소라, 유희열, 델리스파이스, 신해철, 자우림을 좋아했다. 그들로 인해 감성 가득한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 응답하라를 봤을 때, 묘한 아쉬움이 들었다. 오빠들의 춤을 울면서 따라 추는 주인공 성시원을 보면서 아... 내 청소년기는 왜 저렇게 뜨겁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지. 난 뮤지션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한 번도 뜨거운 적은 없었다.
가수들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도 관심이 없었다. 춤은 내가 춰야지 뭔 남이 춤을 추는 걸 보냐 생각했기에. 그랬던 내가 보아가 얼마나 대단한 아티스트인지 10년이 지나고 알게 되었지...
단 한 번도 뜨거운 적이 없었던 나의 과거를 돌아보며 아쉬웠다. 하지만 더 아쉬운건, 나의 뒤늦은 미지근한 관심을 받은 돌들은 이미 해체 또는 구설수를 안고 있었다는 것. 그렇다고 지금 아이돌로 관심을 돌리기엔 그닥 애정이 가지 않아 말이지.
참... 타이밍이란 묘하다.
서바이벌의 조상 격으로 올라가면 슈스케가 있다. 그 이후 다양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지만 인기는 몇 년 만에 급격하게 식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아마추어의 성장 또는 발견에 초점을 두고 있었고, 그게 반복되다 보니 질려버린 것.
대중들이 나가수의 등장에 열렬하게 환호했던 것은 바로 식상했던 그 지점을 깨버렸기 때문이다.
나가수의 첫 등장은 강렬했다. 국내 최정상에 선 가수들이 경연을 한다고? 쌀집아저씨의 감은 정말 죽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탄, 또 감탄을 했다. 그 당시 완벽한 무대를 마친 김건모가 입술에 엉망으로 립스틱을 바르는 순간 시청자들이 분노했던 것은 나가수를 보통의 예능과 다른 눈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상에 섰던 이들의 무대에 대한 존중이자 출연자와 프로그램 자체를 존중하며 보고 있었기에.
프로를 데리고 장난치지 말라
퀸덤은 아이돌계의 나가수라고 보면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무게감은 비록 나가수에 비해 많이 떨어지나 프로의 세계에서 1등은 기본으로 해봤던 이들, 1-2년 차가 아닌 말 그대로 짬바가 있는 그룹이 보여 경연을 펼친다? 나가수보다 말랑하지만 볼 것은 더 많은 무대. 이게 화제가 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슈스케가 시즌을 거듭할수록 관심이 떨어진 이유는 하나다.
대중들은 이제 아마추어의 성장이 아닌, 프로가 더 한 단계 성장했을 때를 보고 싶어 한다.
물론 팬의 입장에서는 ‘키우는 맛’이 있겠지만, 이미 대중들은 아마추어의 성장을 몇 년에 걸쳐 보아온 상태. 그러니 나가수의 등장에 열광했던 것이다.
나가수가 사라진 지금. 그 공백으로 퀸덤이 들어왔고, 이는 확실히 되는 게임이었다.
아이고 숨차. 잠깐 숨 좀 돌리자. 후우
그럼 본격적으로 퀸덤 2의 패착이 무엇인지 보자.
1. 캐스팅의 실패
일단, Kep1er(케플러)의 합류부터가 잘못되었다.
팬들이 분노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분노하기 전에 생각해보자. 케플러는 2021년 서바이벌로 구성된 그룹으로 팬들 사이에서의 히트가 아닌 대중적으로 히트한 곡은 없는 상태. 회사로 따지면 고작 경력 1년이 된 신입사원이다. 그들이 재능이 없는 그룹이란 얘기가 아니다. 각자 하나하나 성장하는 중이고, 자리를 잡아하는 중이다. 퀸덤은 나름의 짬바가 있는 그룹들이 왕좌를 차지하는 곳인데, 그곳에 1년 경력의 신입사원이 나온다? 애초부터 밸런스가 맞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아이들은? 하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묻고 싶다. 아이들과 케플러가 같은가? 아이들은 전소연이란 그룹의 주축이 되는 프로듀서가 있는 상태고 자신들의 색과 콘셉트들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서바이벌로 막 구성되어 활동하기 시작한 그룹과 무게감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퀸덤에서는 어느 정도 본인들의 장점을 알고, 무대와 대중들을 이해하고 있는 그룹들의 ‘수싸움’이 보는 최고의 재미였는데... 그게 애초에 불가능한 그룹이 아닌가.
오해 말라. 내가 봐도 그들은 예쁘고 재능 있다. 앞으로도 더 잘할 것이다. 국민적인 그룹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지금은’ 퀸덤에 맞지 않는 그룹이란 것이다.
퀸덤은 ‘퀸’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프로그램이다. ‘공주’가 아니란 말이다. 그렇기에 급에 맞는 그룹이 나왔어야 한다. 시즌 1은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시즌 2는 밸런스 자체가 망가진 채로 경연이 시작된 것이다. 거기서부터 첫 단추가 잘못되었다.
지금 퀸덤 2가 ‘효린을 이겨라’가 된 것이 이 밸런스가 무너져 버렸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2. 잘 보이지 않는 구성원
퀸덤 1의 가장 큰 장점은 멤버 개개인이 다 보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AOA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AOA 하면 설현밖에 모르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퀸덤 1에서는 혜정 캐릭터가 돋보이면서 각각 멤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긴 시간 활동을 했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이들이 각각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빛났던 것은 꽤 놀라운 장면이었다. 단지, 부각될 기회가 없었을 뿐, 정말 좋은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뮤지션이었다는 것. 게다가 기존에 섹시 이미지를 통해서만 소비되던 그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었던 콘셉트를 하면서 날아다니는 걸 보는 건, 또 하나의 통쾌한 포인트였다. 소속사가 그간 아티스트에 대한 이해 없이 얼마나 안일하게 일을 했는가를 알 수 있었다. 퀸덤 이후 논란은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AOA야 말로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지.
퀸덤 1이 그룹에서 특정 한 명이 보이는 것이 아닌 개개인이 보였단 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몰랐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과, 프로들이 칼을 갈았을 때, 뭘 볼 수 있는가가 결국 대중들이 궁금한 거니까
그런데 퀸덤 2는 우르르 나온 이들이 세 그룹이나 된다. 게다가 두 팀은 이름도 비슷하다. 우주소녀, 이달의 소녀. 하아... 누가 누구냐. 결국 그들 중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는 또 정해져 있었다.. 이게 기존의 서바이벌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게다가 하나 더 꼽자면. 이번 3라운드 댄스 미션. 정말 최악이었다고 생각한다.
스우파 단물을 빨아야겠다고 생각했겠지. 그 안일한 생각이 악수였다고 본다. 이들에게 스우파 3팀의 안무를 고르게 하고 이들의 공연을 보여준다?
여왕의 자리를 놓고 싸우러 나온 이들을 그냥 ‘아이돌이 안무를 받아서 얼마나 잘 소화하는가’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퀸덤 1에서는 각 팀에서 1명이 대표로 나와 무대를 만들고, 이들이 모여 또 하나의 무대를 만들었다. 이는 왕좌를 놓고 싸우던 이들이 경쟁도 하지만 하나의 무대로 화합한다는 느낌도 있었기에 의미 있었다. 게다가 개인 배틀에서는 유아가 1등을 했지만 ‘러블리즈’ 예인의 레전드 무대가 나오기도 했다. (아직도 가끔 그 무대를 본다)
확실히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은 어떤가? 안무가가 안무를 주고, 얼마나 잘하는지 숙제처럼 확인하고, 코치를 한다. 3팀이 경연을 한다. 결국 예상대로 퀸이나 팀의 '탐이나'가 1등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3라운드의 승자는 퀸이나 팀이 아닌, 프라우드먼이라고 본다. 모니카의 카리스마와 그녀의 안무만이 부각되었다. 가뜩이나 참가자가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는데, 그들에게 가야 하는 스포트라이트를 뺏어버리는 기획은 누가 한 것인가. 단물 뽑아먹기도 작작해야 한다.
물론, 퀸덤 1 개인 무대도 안무를 받아서 했겠지. 하지만 그 무대를 기획한 건 아티스트 본인들이었을 것이고, 결국 스포트라이트도 그들이 받았다.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
숨이 차다, 숨이 차.
3. 궁금하지 않은 결말
퀸덤 1의 최대 수혜자는 오마이걸이란 것에 누구도 반기를 들지 못할 것이다.
6팀 중 단연 최약체였던 그들이 만들어낸 드라마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퀸덤1의 레전드 무대는 오마이걸의 ‘데스티니’
2라운드 커버곡 대결에서 멤버가 회의하는 장면은 퀸덤 내 최고의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자체 평가가 바닥을 친 상태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잘하는지 명확하게 아는 이들이 만든 드라마. 이 드라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아이돌 시절 내내 내공으로 쌓아온 드라마였다고 본다.
그래서 이번 퀸덤에서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그룹은 브레이브걸스였다. 첫 라운드에서 거하게 똥볼을 차는 걸 보고 너무도 화가 났지만 두 번째 MASK 무대는 좋았다고 본다.
이번 시즌엔 멋진 무대는 많았지만 좋았다고 느낀 무대는 MASK 정도였다. 왜였을까를 고민해보니 답은 하나였다.
대중들이 퀸덤에 기대하는 건 짬바가 찬 프로들이 자신들의 장점을 찾아내 극대화하고 소속사가 만든 무대가 아닌 자신들이 하고 싶어 하는 무대를 만드는 것.
이에 해당하는 무대는 MASK였다.
브레이브 걸스가 보여준 무대가 워낙 적었던 탓도 있지만 그간 보여준 적이 없던 무대였다는 점. 효린이 무대 잘하는 거 누가 모르냔 말이다. 비비지도 무대 잘하지 누가 모르냐는 거지. 멋진 무대였지만 하나같이 예상 가능한 무대였다. 하지만 이건, 그간 그들이 보여준 모든 무대를 뛰어넘어야 하기에 더 어려운 과제 인지도 모른다.
퀸덤 1이 2라운드의 드라마를 만들며 다음이 궁금해지게 만들었다면, 퀸덤 2는 2라운드에서 꽤 괜찮은 무대를 했던 브레이브걸스가 또 6위를 하면서 김이 빠지기 시작했다. 결국 팬덤 싸움인가? 하는 생각이 드니 기존 서바이벌과 차이가 뭔가 싶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러니, 다음 라운드가 궁금해지냔 말이다....
그리고 퀸덤의 영향력을 의식이나 한 듯 좋은 이미지를 만들려 타 그룹의 무대에 과장된 리액션을 하는 것도 아쉽다. 퀸덤 1은 상대의 무대를 보면서 환호도 하지만 한껏 경직되어 경계하는 눈빛들이 드러날 때, 보는 이들도 같이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설현의 웃는 듯하며 무대를 보는 날카로운 눈빛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으니. 예전 영상들의 댓글을 보면 이런 리액션들의 좌표들이 한가득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장면이 단 하나도 없다. 긴장감이 떨어지는 리액션은 무대의 긴장감도 사라지게 만든다.
후우... 다 왔다. 이제 정리.
지금까지 줄기차게 떠든 이유들로 퀸덤 2가 퀸덤 1 보다 화제성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로서 퀸덤 1의 영광을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어떻게든 열심히 하려는 그룹들의 노력을 여왕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대결이 아닌 그저, 서바이벌에서 이기려는 모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만든 건 제작진이라고 본다. 여왕의 자리가 가진 품격의 시작점을 망쳐 놓은 것이 누구인가. 잘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퀸덤 2에 나온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모든 경쟁은 잔인하고 아프다. 그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아쉬움이 많지만 애정을 가득 담아 마지막 무대까지 달려갈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바이다.
M.net은 이번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으로 가게 된다면, 라인업을 짤 때, 더 신중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가면 슈스케의 단물 빠지는 것처럼 관심이 쭉 빠져 1등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이 나오게 될 것이다. 단순 팬 장사로 조회수만 뽑아 먹을 요량으로 퀸덤을 쓰기엔 너무도 아까운 콘셉트의 프로그램이다. 오랜만에 잡은 좋은 콘셉트는 아끼고 아껴 잘 만들어야 한다. 이걸 단순 요량으로만 쓰는 걸 제일 먼저 눈치채는 건 시청자이기에.
제작진은 이번 패착을 잘 명심해 다음을 준비했으면 한다.
이는 누구보다 퀸덤을 아끼는 시청자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내 열변을 다 들은 친구는 말했다.
팬 아니라더니 맞네
맞다, 난 아이돌 팬이 아닌 퀸덤 팬이다.
내 최애의 병크는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결말이 궁금하지 않아 진 지금이지만, 그럼에도 프로그램이 잘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다.
다만, 3 시즌도 이따위로 가져간다면, 그냥 만들지 않는 것이 나을 것이다.
참가하는 아이돌들의 마음이 아깝기 때문이다.
후우.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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