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월요일을 채우던 프로그램이었던 <씨네마운틴>이 지난주 월요일 시즌2의 막을 내렸다.
나에게 씨네마운틴은 인생프로그램이었다. 무슨 이 방송이 인생프로그램이냐? 하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에겐 그랬다.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을 때, 나는 장항준과 송은이의 웃음을 붙잡고, 내 인생에서 이미 사라져 버린 웃음의 조각을 찾으려 무진장 애를 썼으니까.
그들이 웃을 때, 같이 웃으며 나는 지옥 같았던 시간을 견뎠었다.
잠 못 들던 새벽에 이미 10번도 넘게 들었던 1화 방송을 틀어 놓고 천장을 보고 있노라면 주룩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그렇게 울고 웃으며 들었던 1, 2회 방송은 그 자체로 내 인생의 레전드였고, 시즌 1은 그렇게 버티고 버텼던 나의 시간에 함께한 진짜 친구 같은 방송이었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추천하는 방송이 바로 씨네마운틴이었다.
"칭찬받으니까 더 잘하고 싶어 졌어!"라며 무리한 개그를 일삼는 항주니의 발언들은 (항준이라고 부를게요. 저에겐 장감독 보단 더 애정이 담긴 단어이니... ) 그 말 자체로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으니까.
오죽하면 "이모는 누구 팬이야?"라고 묻던 조카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나? 장항준?"이라고 답할 정도였으니.
너무도 기다렸던 프로그램이었기에, 업데이트도 안 되는 팟빵에 거의 매일 들어가 지난 방송을 듣는 것이 낙이었던 나였기에 <씨네마운틴> 컴백 소식은 정말 심장 뛰는 소식이었다.
다른 건 필요 없다. 그냥 돌아와 주기만 하면 된다! 하고 첫 회를 틀었을 때, 나는 그저 송은이 장항준의 목소리 만으로 "만족"이었다. 그런데... 어라... 시즌 2의 포맷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인물열전'이란 이름으로 매회 게스트가 초대 되었고, 그들의 추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포맷으로 바뀐 것이다. 아... 진짜 너무 당황스러워서 할 말이 없었다.
방송시작에 앞서 항주니는 공부하는 것이 힘들고, 시즌1이 자신에게 힘들어서 괴로웠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왜 그렇게 서운하던지... 내가 너무나 애정했던 모든 순간을 괴로웠다고 하는 거 같아서 좀.. 아니.. 많이 속이 상할 정도였다. (물론 안다. 그 말도 항주니 화법이란 것을...)
공부하는 것이 싫은거 너무 이해되고, 사실상 할 말을 짜내기 위해 대본을 봐야 하는 순간이 힘들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래서 시즌2에서 <인물 열전>이라는 포맷을 썼구나... 싶지만... 난 제작진에서 씨네마운틴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본질에 대한 조금 깊은 이해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즌2를 들으면서 제일 불편했던 부분은 '우쭈쭈' 분위기. 예전 씨네마운틴 관련 포스팅(아래에 링크 달아두겠다) 에서도 언급했듯, '방구석 1열'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만의 리그, 즉 자기들끼리의 우쭈쭈 분위기가 매우 불편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를 앞두고 온 사람이거나 본인이 출연한 영화를 이야기하니... 우쭈쭈가 조금은 필요하겠지만.... 사람을 앉혀놓고 칭찬만 하는 상황이 계속된다? 사실 그런 걸 들으려면 그냥 다른 걸 들으면 된다. 굳이 <씨네마운틴> 일 필요가 없지...
<씨네마운틴>의 매력은 항주니의 '썰'이 9할이다. 영화 내용이야 네이버 찾아보면 되고, 궁금하면 검색하면 된다. 다른 방송에서 다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괜히 필요 없다는 말이다.
씨네마운틴을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는 의외로 간단하다.
회식자리에 놀러온 영화계에서 일하는 정말 재밌는 어른의 이야기. 철없고 이상해 보이지만 문득문득 진짜 어른인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진짜 내 주변에 있었으면 좋겠는 '나의 아저씨'의 해맑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다.
두 사람이 방송했던 랜선 술자리에 수많은 사람이 모였던 이유도 바로 그것.
정말, 친해지고 싶은 사람. 같이 술 먹고 싶고, 놀고 싶고, 그냥 함께 깔깔거리고 싶은 사람이 항주니기 때문이다. 그걸 담은 것이 <씨네마운틴>의 매력이었다.
그런데 시즌2에서는 이 모든 매력이 모두 거세되었다. 게스트가 오면서 게스트와의 호흡을 위해 애쓰는 항준이가 사실상 본인의 매력을 끌어내는데 실패했다고 본다. 평소에 친한 조근식, 권일용, 문상훈, 봉태규 정도가 그래도 꽤 재밌던 베스트 에피소드 였고, 나머지는 사실상 조금 애매했다. 몇 편은 조금 땐땐한 느낌까지 들기도 했으니... 특히, '김국진 편'은 듣다가 포기했다. 그는 평소 굉장히 좋아했던 코미디언이었건만 저렇게까지 까칠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떠나지 않아 결국 반정도 듣다 하차하고 말았다.
조근식, 권일용, 문상훈, 봉태규의 에피소드가 재밌었던 이유는 항주니와의 친분이 기본 바탕이었기에 항주니가 방송에서 마구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놀리고, 놀림당하고, 비난하고, 비난당하는 모든 순간이 웃음으로 승화되는 편안한 술자리 느낌. 그 느낌 때문에 그나마 아직도 저 세 에피소드를 듣고 듣고 또 듣는 중이다. (정웅인, 강윤성, 이선균 편도 그런 의미에서 나쁘지 않았다)
알고 있다. 항주니의 삶이 정해져 있으니 에피소드는 정해져 있고, 제작진에서도 조금의 변주를 주려고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을. 하지만 그 선택은 애매했다는 결론.
어쩌면 우리는 정확한 팩트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항준이의 주작이 가득 담긴 썰을 들으면서 웃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조근식 감독의 말처럼 그의 말은 온통 주작에 진실이 조금 스쳐가는 정도이지만 너무너무 재미있고, 오히려 그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키기도 하니까. 그리고 듣다 보면 안다. 저거 저거 다 뻥이구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에 매료되고 자꾸자꾸 듣고 싶어 지는 건, 유머가 사라진 작금에 힘든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통해 웃으며 잠시 답답함을 잊고 싶은 것이다. 결국 웃음이란 건 한없이 지금을 가볍게 만들어 내가 가진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과정이 아닌가.
청취자들은 철없어 보이지만 누구보다 단단하고, 자존감 넘치는 그를 보며 ' 저 사람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멋지기까지 하네!' 하는 생각에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항주니의 그런 모습을 씨네마운틴에서 보고 싶은 것이다.
뭐 엄청 거창한 느낌이긴 한데 줄이면 한 문장이다.
"딴 거 하지 말고, 그냥 두 사람이 영화 얘기 해줘요."
지난 월요일에 2 시즌 마지막 방송을 한 후, 방송이 없는 첫 주 월요일이 지금이다.
허전하지만 허전하지만은 않다. 곧, 돌아올 것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다른 기교 이런 거 없이 그냥 두 사람이 썰을 풀고, 가끔 정말 친한 사람들. 섭외가 아니라 항주니 썰 정정을 원하는 사람만 스튜디오에 직접 부르는 ㅋㅋㅋㅋ 정도였으면 좋겠다.
그냥 뭐, 안 해도 좋으니 그냥 돌아와도 된다.
수없이 생의 터널을 마주했다.
이미 어둡고 긴 생의 터널을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생은 끊임없이 나를 터널 속에 집어넣는다.
길고 길었던 터널 속에서 <씨네마운틴>을 들으며 웃었던 시간은 그 터널이 끝날 것이란 아주 조금의 믿음을 불어넣어 주었다.
또다시, 터널 속에 들어온 나는 이번엔 이런 확신이 있다.
지금 터널엔 끝이 있을 것이다.
터널이 길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 시즌3을 기다리는 시간도 길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오래오래 같이 갔으면 하는 바람.
언젠가 또, 생의 어두운 곳에 놓이더라도 같이 깔깔거릴 수 있는 씨네마운틴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뭐야... 나 완전 사랑하네 이 프로그램 ㅋㅋ
그래, 고백하지 뭐, 비보, 시네마운틴, 항주니, 으니 모두 사랑한다.
그러니 이번엔 좀 빨리 돌아와.
(씨네마운틴 1시즌 관련 지난 포스팅)
https://ideasoop.tistory.com/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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