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코로나가 발병이 본격적으로 뉴스를 통해 알려졌을 때만 해도 팬데믹 상황이 이렇게까지 오래갈 줄은 전혀 몰랐다... 쫄보인 나는 그간 번번한 외출 한 번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6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슬슬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 다시 한 번 코로나가 창궐할 줄이야...
예전엔 전쟁이라 하면 적어도 눈에 보이는 적과의 싸움이었지만, 이젠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3차 세계 대전은 생화학 전쟁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이렇게 와 닿는 시대가 되어버렸으니...
코로나로 난리가 났던 시기에 가장 많이 주목받은 영화는 <컨테이젼>이지 않았을까. 이 작품은 처음으로 리뷰했던 <빅쇼트>와 비슷한 구성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하나의 사건, 이를 둘러싼 이들의 이야기. 다른말이 필요 없다.한마디로 잘 만든 작품이다.
혹시, 이 영화를 기억하는가?
<컨테이젼>의 감독은 <오션스> 시리즈의 감독 바로 스티븐 소더버그. 하나의 사건에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는 이미 도가 튼 사람이 아닌가. 그런 그가 2011년도 가지고 나온 영화가 바로, <컨테이젼>이었다. 감독이나 작가가 인생에 한번쯤 작두를 타는 순간이 온다고 하는데, 소더버그에겐 2011년이 그 시기지 않았을까 싶다.
<컨테이젼>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베쓰 엠호프(기네스 펠트로 역)가 홍콩 출장에서 돌아와 돌연 발작을 일으키며 사망하고 그의 아들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그 이후 세계 곳곳에서 베쓰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대거 발생하게 된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 미국 질병통제센터와 세계 보건기구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해 최초 발병경로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 이후 세계는 패닉 상태가 되어버리는데, 이와중에 진실이 은폐되었다고 주장하는 프리랜서 기자가 음모론을 펼치며 사람들을 혼란케하고... 세계가 통제 불능이 된 상황에서 질병에 대항하기 위해 사람들은 고군분투를 한다.
이 영화의 연출은 냉랭하게 진행된다. 베쓰의 죽음 그리고 그 상황 뒤에 오는 모든 사건과 상황들에 대해 감독은 일정 거리를 두고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감정에 치우치는 장면이 하나도 없으니 관객은 보다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공포감은 좀 더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스포가 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크게 한번 놀란 장면이 있다. 바로 에린 미어스(케이트 윈슬렛 역)박사에 대한 서사였는데, 사실 영화를 보면서 예상도 못했고, 이를 전개하는 방식 또한 매우 냉정했다. 그래서 넋 놓고 그 과정을 지켜보던 관객들이 느낀 충격과 공포는 굉장히 컸을 것이다. 그의 연출방식은 상당히 고급스러웠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끝난 후 드라마를 보여주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기도 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게 영화인지, 다큐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이 팬데믹 상황에서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을 선동하는 인물들이 나오기도 하고,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들과 신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을 보며 이 얘기가 우리 얘긴지 미국 얘긴지 헷갈렸다.
영화 마지막, 이 병이 대체 어떻게 시작 된 것인지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모두 박쥐의 등장에 놀랐겠지만 난 아니다. 손을 안 씻고 앞치망 손을 슥슥 문지른 썩을 주방장 놈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손!!!!! 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제발, 손 좀 씻자 인간들아.
가을에 2차 팬데믹이 올 거란 예상들이 많았다. 단지 예상으로만 끝나길 바랐는데... 그 일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번 상황은 정말 무서운 상황이다. 말도 안 되는 신념을 바탕으로 자기들끼리 가짜 뉴스를 공유하고 있다. 확진을 받은 사람들이 검사를 피해 도주를 하고, 무슨 첩보전을 방불케 하듯 숨어 다니며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으니... 이번 상황은 공포를 넘어서 조금 슬프기까지 하다.
어제, ‘완치자’로 퇴원한 이들이 아직도 코로나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글을 읽었다. 그들이 겪는 현상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Brain fog. 머릿속이 뿌옇게 되는 순간을 하루에도 여러 번 겪는 다는 것. 코로나에 적확한 약이 나오기 전까지, 어쩌면 완치는 있을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영화에선 마지막에 신약이 나오고 끝이 나는데, 현실에선 아직도 신약은 그저 먼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이 그리워진다는 이야기도 이미 옛이야기가 된 듯하다. 종식이 선언되는 날이 올까? 이제, 마스크가 익숙해져 누군가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그에게 가는 시선이 곱지 않다. 마스크가 익숙해진 일상이 이제 슬픔을 넘어 평범해지고 있는 것이 두렵다.
좋은 날이 올 거란 이야기. 그 힘이 없는 낙관에 조금의 기대를 실어본다.
이미 영화 같은 현실을 살고 있어, 굳이 봐서 뭐해 싶기도 하겠지만 잘 만든 영화다. 매우 추천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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