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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Recipe/영화

조금 미친 것 같은 당신과 함께 춤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by LifeRecipe 2020.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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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들리 쿠퍼를 처음 봤던 건, 스무 살 무렵 <ALIAS>란 드라마를 통해서였다. 주인공 제니퍼 가너의 친구로, 그녀를 짝사랑하는 기자 역으로 출연했는데, 그 드라마를 보면서 조연으로 있긴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다음으로 본 작품이 <키친 컨피던셜>. 주연을 맡은 그를 보며, 아 영화 하나만 잘 만나면 엄청 뜨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는 지금 헐리웃 대스타로 자리 잡았다.

 

10년도 더 된 드라마 <MEDIUM>. 우리나라엔 <고스트 앤 크라임>으로 알려진 이 드라마는 개인적으로 엄청 애정하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에서 옷가게 주인 딸로 나왔던 한 여배우가 있었다.

 

 

 

 

그 드라마에 나왔던 수많은 조연 중에 그리고 특히 금발의 조연들 중에 왜 그리 그녀가 눈에 박혔는지... 헝거 게임에 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그녀도 지금 헐리웃 대스타가 되었다.

 

두 사람은 떡잎부터 다른 배우였다고 생각한다. 착착 감기는 대사 처리 방식. 액션과 리액션의 사이에서의 움직임이 남달랐다. 그런 그 둘을 알아본 내가 어찌 지나칠 수 있었을까. 이 두 사람이 나온 영화를.

 

 

조합 한 번 끝내준다

 

 

그런데 말이다. 이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도 떡잎부터 다른 영화였다.

 

콘텐츠를 사랑하는 이에게 전형적이지 않는 캐릭터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들은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다. 상처 받은 두 남녀. 이들을 표현하는 방식은 여럿이다. 슬픔에 잠겨 있던지, 히스테리를 부리던지, 과거를 잊지 못하던지 등등. 상처 받은 이들의 행동을 관객에게 설득하는 방식은 여럿이지만 이토록 도발적으로 캐릭터를 설명하는 영화는 만난 적이 없었다. 

 

왜? 둘 다 미쳤기 때문이다.

 

미쳤다는 단어를 조금 가볍게 바라보자. 둘 다, 정상 근처에 가지는 못하는 이들.

 

남자 주인공인 펫은 부인의 불륜장면을 목격한 후, 불륜 상대를 폭행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결혼식 축가로 썼던 음악을 아내가 불륜남과 샤워를 할 때 틀어놨기에, 그 노래만 나오면 멘탈이 부서진다. 여자 주인공인 티파니는 남편이 사고로 죽은 이후, 외로움을 극복 못하고 직장동료 전원과 섹스를 해서 해고당한다. 두 사람 모두 엄청난 상처를 경험했고, 이를 극복하지 못해 멘탈이 바닥까지 추락해 있는 상태에서 서로를 만나게 된다.

 

이 영화는 미친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빵빵 터지는 에피소드가 수두룩하다. 두 사람의 조금 핀트 나간 티키타카도 재밌었지만, 펫이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고 결말에 화가 나 새벽 3시에 책을 집어던져 유리창을 깨고 부모님께 항의하는 장면이나, 펫에게 개빡친 티파니가 찻집 테이블을 엎고 미친년처럼 웃은 다음 카페를 빠져나와 유리창에 대고 펫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장면에선 기가 막혀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이 장면들은 단순히 웃기는 건 둘째치고 두 사람의 엄청난 연기 내공까지 느낄 수 있었다. 

 

보통 이런 플롯에서의 두 주인공은 각자 서로에 대한 오해로 인해 갈등을 맞이하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상처를 보듬어주며 생을 극복해 나간다. 이 영화에서도 니키에게 편지를 전해준다는 조건으로 시작한 두 사람의 댄스대회 연습은 시작부터 삐걱이며 큰 골자는 보통의 영화와 비슷하게 진행되지만 이 둘은 좀 다르다. 보통 한쪽에서 상처를 받으면 누군가는 그 상처를 안으며 전개가 되는데 잔뜩 뾰족해진 채로 서로에게 상처를 내는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해봤다. 어쩌면 그들은 스스로에게 가장 뾰족하게 군것은 아닐지. 결국 상처 받은 사람은 그들이었는데 말이다. 

 

평범하지 않은 두 캐릭터의 미친 티키타카를 보다 보면 진짜 저런 전개가 가능할지 의아할 때도 있었지만, 아주 훌륭해서 무릎을 친 장면도 있었다. 바로, 티파니가 징크스를 신봉하는 펫의 아버지(로버트 드 니로)의 징크스를 하나하나 반박하며 그들에게 댄스대회 평점 5점 이상 받는 것에 도박을 걸도록 하는 장면. 아들에 대한 실망을 기대로 바꿔버린 신의 한 수. 우여곡절 끝에 댄스대회에서 고작 5점을 받고 대회장이 떠나가라 환호하는 이들을 보며 결국 인생이란 이런 게 아닌가 생각했다.

 

10점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깨부술 5점이란 점수가 중요한 것이지.

 

우리는 영화를 보며 펫과 티파니가 조금 미친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우리가 더 미쳐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사회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상처를 감추며 사는 아픈 영혼들.

 

티파니가 조금 미쳐있는 펫을 알아보았듯, 자신과 비슷하게 상처 받아 그 상처를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람인 것을 알아보았듯, 사람들은 누구나 나를 알아봐 줄 나만의 한 사람을 꿈꾼다. 계속되는 생의 상처에서 조금 미쳐 보이는 나라도, 불완전한 나라도 사랑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건. 나의 치부마저 감싸 안아줄 누군가가 있다는 건, 말 그대로 실버라이닝 : 구름의 가장 흰 가장자리, 밝은 희망이기에...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EXCELSIOR...

 

미친 나에게도 실버라이닝을 마주할 순간이 오길.

그 시간을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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