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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Recipe/영화

오래가는 콘텐츠의 조건 <당신이 잠든 사이에>

by LifeRecipe 2020.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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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영화가 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등등. 90년대, 맥 라이언과 산드라 블록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꽤나 주름잡는 여배우들이었으며, 이들이 나온 영화는 항상 기본 이상은 했기에 어떤 영화를 선택해도 ‘시간을 버렸다’는 느낌을 받진 않았다.

 

20년이 넘게 흘렀다. 영화에 들어가는 자본의 규모는 엄청 커졌고, 기술력도 좋아졌다. 화질? 그건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매일 쏟아지는 영화들 사이에서 왜 자꾸만 이미 다 알아서 대사까지 외우고 있는 옛 영화들에게 손이 가는지..

 

 

포스터 마저도 좋다 

 

 

로맨틱 코미디의 황금기에 나왔던 영화 중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영화는 단연 <당신이 잠든 사이에>.

산드라 블록이 나온 영화는 거의 다 믿고 보는 것도 있고, 그녀가 등장하면 별거 아닌 스토리도 왜 이렇게 재미있게 느껴지는지... 로맨틱 코미디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멋진 남자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난 좀 생각이 다르다. 감정이입이 충분히 되는 여주인공의 지분이 70% 이상이라고 본다. 산드라 블록의 경우 연기가 개연성이 되는 몇 안 되는 배우가 아닌가. 이러니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으로 그녀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당연히 좋을 수 밖에...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어도 그녀는 수많은 띵작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 오션스 8은 빼자...)

 

 

 

이 두 영화도 엄청 좋아하는 작품!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가족이 없이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여주인공 루시는 홀로 짝사랑하던 남자를 우연히 사고에서 구하게 된다. 병원 간호사의 오해로 졸지에 약혼자가 되어버린 그녀는 남자의 가족과 친해지게 되고... 자신을 의심하는 짝사랑 남자의 동생 잭과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그런 이야기. 오해로 시작했지만, 그 오해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되는 플롯. 사실 너무도 흔한 구성이다.

 

오랫동안 가족의 온기를 얻지 못했던 주인공이었기에 짝사랑하던 남자의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겪은 그 온기의 힘은 엄청 강렬했을 것이다. 그 가족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질 정도였으니... 시끌시끌, 티격태격 하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그곳의 온기를 어떻게 놓칠 수 있었을까. 마지막 결혼식장에서의 루시의 고백처럼 그녀가 사랑에 빠진 건, 잭이기 이전에 그의 가족이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엄청난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야기의 진행이 촘촘하다. 대사의 흐름도 훌륭하고, 오해가 계속 쌓이고 이를 해결해 나아가는 방식도 깔끔하다. 배우들의 연기? 그건 언급할 필요가 없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데 어떤 큰 이유가 필요할까? 사실, 어떤 이를 보고 ‘이 사람이다!’ 라고 느끼는 순간은 찰나에 일어난다. 항상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보게 된다는 것. 대부분의 망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은 이를 잊은 것들이 많다. 있어 보이기 위해,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작은 것을 쌓아가는 것이 아닌 큰 것만 보여주려고 하다가 결국 관객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상업영화들이 이야기에 반전에 집착하고, 우연에 기대어 모든 사건을 진행시키게 된 건. 이야기의 내용보다 ‘있어 보이는 것’에 집착하게 된 건.

 

...

 

몇 년 전, 아는 분의 소개로 고등학교로 출강을 나갔던 적이 있다. 몇 개의 학교에서 글 꽤나 쓴다는 아이들이 모였고, 이들을 대상으로 시나리오 강의를 했었다. 강의를 위해 이론들을 정리하며 나름 공부가 되었지만, 그보다 더 큰 공부가 되었던 것은 어린 친구들이 호기롭게 제출한 시나리오였다. 아이들이 과제로 가져온 시나리오엔 공통적인 특징은 하나였다. 사건이 있을 뿐, 인물이 없다는 것. 자극적인 사건, 나름 반전을 노린 설정이 있었지만 주인공의 성격, 주인공의 서사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인물의 중요성에 대한 강의를 하며 난 이렇게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닌, 그 인물이 할 대사를 받아 적어야 한다”

 

말만 잘하지, 사실 나도 어려운 것이 인물 구축인데 말이다. 

 

...

 

책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굉장히 인상 깊었던 작가의 말이 있었다.

 

‘인물들의 뒤를 쫓아가다 보니 소설이 끝나 있었다.’

 

어렸을 때는 작가가 그저 있어 보이고 싶어 쓴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야기에서는 인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아무리 충격적이고 신선한 사건을 만나더라도 인물이 매력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좋은 시나리오는 사건보다 인물 구축이 제일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 구축된 캐릭터는 사건 안에서 살아 숨 쉬게 된다. 난 그저, 그 뒤를 따라갈 뿐.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두 주인공 루시와 잭은 굉장히 잘 구축된 캐릭터이다. 캐릭터가 분명하니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들이 하나하나 살아있게 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시작은 작은 오해로 만들어진 사건이지만 이 안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전혀 녹슬지 않고 살아있어 여전히 나의 시간을 종종 빼앗아 가고 있다.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 20년이 지나도 누군가의 인생을 채워갈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언제쯤 내 맘에 드는 작품이 나오게 될까? 아, 우선 쓰고 말해야 하는구나. 훗.

 

오늘부터 캐릭터를 한번 빚어보자. 내 인생은 내 맘대로 안 되지만, 내 캐릭터는 적어도 내 맘대로 만들 수 있으니. 아, 그것도 아닌가? 뭐 여하튼. 일단 시작하자. 시작.

 

...

 

덧붙이는 이야기... 

 

한때, 굉장히 유행했던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란 책을 기억하는가? 열풍에 가까웠던 그 책에선 이 영화를 자막 없이 보고, 대본을 받아 적어보는 것을 해보라고 했었는데... 열 번도 넘게 본 이 영화에 자막을 빼는 일이 왜 이리 어려운지 원. 자막이 있어도 어느 정도 귀에 익는 영어들이 있기에 한번 빼볼 만도 싶지만, '자막 감추기' 버튼을 누르는 것이 참 손에 안 익는다. 뭔 영어공부. 그냥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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