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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Recipe/영화

나의 '족구'같은 인생, 나만의 '족구'를 찾아서 <족구왕>

by LifeRecipe 2020.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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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싫어하는 이야기는 군대 이야기. 그리고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란 말이 있다.

 

대학에 가기 전엔 그 말뜻이 뭔지 몰랐지.

 

술자리에서 이어지는 군대 이야기와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를 직접 듣고 나서야 공감할 수 있었다. 아... 싫어할만하다 증말. 1.5배도 아니고 10배는 부풀려진 이야기를 듣고 또 듣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으니.

 

 

 

 

영화 <족구왕>의 시놉을 처음 읽었을 때, 영화에 대한 흥미가 1도 생기진 않았었다. 난 청춘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도 했고... ‘족구’라는 것에 관심이 아예 없기도 했고... 군대에서 막 재대한 남자 주인공이 ‘족구’를 하는 이야기라고 하니... 정말 끌리지 않는 요소들이 모두 섞여있었으니 말이다. 군대와 축구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주야장천 들어본 사람으로서 그 이야기를 또, 영화로 봐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주변에서 재밌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술자리 트라우마(?)가 있는 나로선 선뜻 손이 닿지 않았다. 

 

지금은 눈만 뜨면 콘텐츠가 쏟아지는 세상인데, 막상 볼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훌륭한 작품들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요즘 것들에게 유난히 손이 안 가던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보게 된 <족구왕>은 가뭄 속 단비 같은 작품이었다.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족구를 좋아하던 주인공 만섭은 제대 이후 학교로 돌아오지만 많은 것들이 변해있다. 족구를 좋아하는 그로서는 족구장이 없어진 것이 가장 큰 충격. 남들 다 스펙 쌓느라 정신이 없는 대학생활에서 그는 홀로 족구를 향한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런 이야기는 주인공이 사회적 통념에 조금 벗어나 있는 것을 그려내며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그의 행보가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주인공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결과로 흘러가게 된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 하지만 <족구왕>은 이 단순한 구성에 재기 발랄한 대사와 톡톡 튀는 인물 구성이 섞이며 생각지도 못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첫 만남에서 다짜고짜 “너 공무원 준비해”라고 만섭에게 강요하는 형국이나 족구를 하는 만섭을 무슨 벌레 보듯 보는 고운이나 다시마만 먹는다는 창호나. 누구 하나 평범하게 보이는 인물은 없다. 족구를 하겠다, 캠퍼스 여신 안나와 연애를 하겠다고 고군분투하는 만섭이 평범해 보일 지경이니 말이다.

 

안나의 '썸남'인 전직 국대 선수인 강민을 눌러버린 만섭의 족구 신공. 이 사건이 학교에 소문이 나며 곳곳에서 족구를 하고 싶었지만 스스로를 눌러왔던 이들이 족구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족구대회가 열리는데... 족구대회? 뻔하지 않는가. 질 리가 없지. 하지만 뻔한 이야기가 뻔하지 않게 풀어내는 건 결국 배우와 감독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족구왕>은 각자의 역할을 잘 해낸 영화였다. 

 

족구 대회를 앞두고 연극 발표를 가장한 만섭의 고백은 조금 마음이 찡했다. 정말 만섭의 말대로 그는 정말 2063년에서 돌아온 사람일까. 마지막까지 감독은 이를 관객의 상상에 맡겼다. 어쩌면 우리의 지금도 2063년의 우리가 간절히 바라서 돌아온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한방을 관객에게 넘긴 채.

 

지금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여러 매체에서 이야기하지만, 이 영화의 연극 씬처럼 강렬하게 전달한 콘텐츠가 있었을까. 사실, 그거 하나만으로 이 영화는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족구왕. 족구를 빠르게 말하면 조금 욕처럼 들린다. 감독이 축구가 아닌 족구를 선택한 이유도 족구 같은 현실에 일침을 꽂아 넣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뇌피셜 해석을 해본다.

 

지난 대학시절을 돌아보면 분명 재밌게 보내긴 했지만, 나의 그 시절을 조금 어정쩡했다. 차라리 미친 듯 놀아보던지, 아니면 미친 듯 공부를 해보던지. 무엇 하나 집중을 못하고 어어, 하다가 그 아까운 시간이 끝나버렸다. 뭐, 지금이라고 다를 것은 없지만.

 

영화가 끝나고 커피 우유를 사러 나갈 뻔했다.. 아무래도 족구의 시작은 커피우유 통인 거 같아서 말이지. 지금이라도 나의 ‘족구’를 찾고 싶다. 내가 현재를 살며 미쳐있을 무언가가. 어찌 보면 청춘에게만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p.s 황승언 배우는 <식샤를 합시다 2> 때부터 눈여겨보았는데, 괜찮은 캐릭터를 하나 만난다면 롱런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필모를 보면 조금 전형적인 캐릭터로 가는 것 같아서 말이지. 쎄고 나쁜 여자 말고, 좀 자신의 틀을 깨는 역할을 한번 도전해 봤으면 좋겠다. 대사 톤을 확 바꾼다던지, 아님 말을 못 하는 역할을 한다거나 뭔가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는 역할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지금의 목소리도 좋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역할의 전형성에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 그녀의 표정연기가 부각되거나 몸을 쓰는 게 좀 더 드러나는 연기를 한번 해본다면, 배우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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