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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Recipe/영화

켄 로치 감독의 저력 <미안해요 리키>

by LifeRecipe 2020.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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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36년생.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 작품을 발표하면 평단의 찬사는 이미 대기 중인 감독. 수많은 유명한 필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의 영화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번 보겠다고 마음을 여러 번 먹었지만, 결국 마지막엔 다른 영화를 선택하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영화 뽕에 조금 취해있던 나는 헐리웃 영화보다는 유럽의 유명한 감독의 작품을 보거나 영화제를 쫓아다니기도 했고, 비록 졸고 나올지언정, 주류와 다른 길을 걷는 영화를 의식적으로 보곤 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대체, 나의 영화 취향은 언제부터 바뀐 것일까?

 

유난히 콘텐츠 취향이 잘 맞았던 직장 동료가 있었다. 통화를 하다 보면 한 시간은 기본으로 훌쩍 넘어가며 드라마, 영화 이야기를 했던 친구였는데, 오랜만에 영화를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화를 찾다가 <미안해요 리키>를 골랐다.

 

그저, 켄 로치 감독이란 이유로. 

 

 

 

 

 

극장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도 전부터 난 말 그대로 오열을 하고 말았다. 함께 영화관을 찾은 동료는 “뭐야, 너무 우는 거 아니야?” 했지만, 난 좀처럼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때 알았다. 어린 시절 나라면 무조건 보았을 이런 영화들에 손을 데지 않았던 까닭을.

 

<미안해요 리키>는 가족을 위해 택배 일을 시작한 가장, 리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소소한 소재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요리는 여럿 이리라. 하지만 켄 로치는 이 소재를 가지고 현실의 민낯을 파고들었다. 영화는 첫 장면의 고용 인터뷰 과정을 통해 택배 일을 시작하는 것이 회사 안에 소속되어 있지만, 자영업자 시스템인 것을 강조한다. 각자가 사장인 셈. 하지만 그건 조금만 들어보면 회사에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만들어 놓은 구멍인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리키의 일은 매 순간 평가가 된다. 고객의 평가. 그리고 시스템의 평가. 택배를 받는 고객의 잘못에서도 불구하고 그가 안 좋은 평가를 남기면 이는 그대로 리키의 잘못이 된다. 밥 먹는 시간조차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삐삐 울리는 경고음에 엉덩이를 떼야하는 신세. 가족을 위해, 행복을 위해 시작한 일은 리키에겐 매 순간이 상처로 남는다. 그리고 그 상처는 대체 누가 주는 것이며, 누가 보상할 것인가.

 

그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려 노력했을 뿐인데... 그의 가족은 계속해서 난관에 부딪히고 흔들리게 된다.  마지막에 가족의 반대에도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차를 몰고 일을 하러 나가는 리키. 그의 눈빛에 담긴 슬픔에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같이 영화를 봤던 동료는 “그래도, 아들이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희망이 있지 않아?”라고 했지만, 나는 왜 그 희망마저 온전히 희망으로 느낄 수 없었을까.

 

20대에 들어선 이후 아주 조금은 세상에 대해 알게 되었고, '현실'을 맞딱드리게 되었다. 난 굳이 내가 직접 대면하고 있는 현실을 브라운관에서 또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가벼운 이야기, 나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정부 비밀요원들의 세계를 누비며 첩보 미션을 해내는 것을 보는 게 속이 편했다. 적어도 그 시간엔 현실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으니... 하지만 <미안해요 리키>를 보면서 난 생각했다. 그냥 잠시 벗어나는 것일 뿐, 나의 현실은 결국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

 

80세가 넘은 감독이 아직도 청년 같은 날카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찍어내고 있다. 반성해야 한다. 우린 나이가 들면 세상에 대한 감각이 둔해진다고 하지만 아마도 감각이 둔해지는 것이 아니라, 둔해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둔감해지고 싶은 것일지도...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스스로 둔감해지려고 한 것은 아닌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둥글게 살려고 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리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행복이란 단어만큼 모호한 것이 없지만, 영화관을 나오며 가상의 인물에게 이렇게 공감하며 그의 행복을 바라게 되는 건, 아마 지금 현장에서 수많은 리키들이 일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택배 박스 전달을 위해 뛰던 딸 리사. 그녀가 그날, 석양이 지는 풀밭 위에 트럭을 세우고 아버지와 함께 샌드위치를 먹는 장면에서 난 그 옛날 어느 순간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파란색 트럭 옆자리에 앉아 물건을 싣는 아버지를 지켜보았던 어린 시절의 나. 땀을 뻘뻘 흘리며 물건을 싣고 차에 오르신 아버지는 내게 물으셨다.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긴 시간이 지났다. 아버지는 어떠셨을까. 행복하셨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덕분에 행복했지만 과연, 아버지는 행복하셨을지.

 

아직도 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손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보는 순간, <미안해요 리키>처럼 울고 웃으며 사랑에 빠지게 되겠지. 네이버 영화 평점에 수많은 사람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난 안다. 그 리뷰들은 보통의 상업영화의 알바 댓글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난 켄 로치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다린다. 그가 오래 건강하길 빈다. 그의 좋은 작품을 더 많이 보고 싶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아도, 한번 시작하면 사랑할 수밖에 없으므로

 

안 본 사람이 있다면, 꼭 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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