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프로그램이든 본방으로 풀 시청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선 방송을 통으로 볼 필요가 없이 재밌는 부분만 잘라 낸 짤방만으로 충분하기도 하고, 그 외에도 짧게 몇 분을 순삭 시킬 영상들이 수두룩하니... 방송 하나를 통으로 보는 것은 마음을 먹고 봐야 할 정도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전과 다르게 10%만 넘어도 대박으로 치는 시청률을 생각해 본다면 공중파의 힘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건 모두 인지하고 있는 사실.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조금의 핀트가 안 맞으면 손을 떼버리는 지금. 몇 년째, 한주도 쉬지 않고 애청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그것이 알고 싶다’
자타 공인 쫄보,
공포영화라면 No, No, NoNoNo를 외치고,
컨저링 박수 씬으로 며칠을 고생하고,
이 시국엔 슈퍼에 나가기도 무서워 강제 다이어트 중인 쫄보중의 쫄보인 내가...
그것이 알고 싶다만은 그렇게 챙겨 본다.
물론, 그알이 무섭긴 뭐가 무서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탈을 쓴 놈들의 미친 행각을 보는 건, 잘 짜인 공포영화보다 더 극한의 공포이기도 하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을 기다리게 된 지 벌써 10여 년이 넘어간다.
방송된 지 조금 지났지만, 나에게 역대급 공포감을 안겨주었던 에피소드가 있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1201회
말할 수 없는 비밀
美 내슈빌 감금 폭행 사건의 비밀
미국에서 잘나가는 음반 제작자 신씨. 그를 따라 미국행을 선택한 여자 백씨(가명). 미국에서 성공한 한인 음반 제작자로 이름을 날린 신씨는 음악계에서 힘이 있는 인물이었고, 그런 그와의 미래를 선택한 여자는 미국행 초반 자신의 선택에 대해 달콤함을 누렸으리라. 하지만... 그녀가 미국행을 감행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건은 발생한다.
그녀는 사진만 봐도 이게 뭐야 할 정도의 섬뜩하게 폭행당한 얼굴로 그의 집에서 탈출을 감행한다. 심한 상처를 방송에 그대로 내보낼 수 없으니 블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뿌연 사진 너머의 그녀 모습은 경악, 그 자체였다. 전문가마저 놀란 그 여자의 모습...
그런데... 이 여자 이상하다.
경찰이 나서서 조사가 시작되자...
폭행을 당했다고 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법정에서 폭행에 대해 증언을 했다가 기존의 진술을 번복하고...
사람들이 그녀를 보호해 주려고 하는데도 다시 그에게 돌아가고 돌아가고.... 초반 15분 정도 시청했을 때, 나는 그녀를 의심하는 사람들과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여자 꽃뱀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을 생각할 때, 자신의 상식선에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나 또한 그렇다. 이 시국에 드러난 수많은 신천지 종교인들을 1도 공감할 수 없는 건, 내가 믿음과 종교에 대해 이해가 없어서 일 수도 있지만, 지극히 나의 상식선에서 해석하고 있어서 인지도.
이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폭행하고 인간 취급도 안한 사람에게 다시 돌아가고 다시 돌아가고.
이 모든 것은 자기가 꾸며낸 거라고 위증 진술서를 쓰고...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들 품에 있으면서도 그와의 연락을 끊어내지 못하는 그녀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나를 경악하게 한 한 장면.
바로 이 장면이었다.
교도소에서 걸려온 신씨로부터의 전화....
이게 뭐야... 뭔 소리야... 하며 보고 있는데, 백씨가 꺼낸 암호문을 보는 순간 소름이 소름이.
그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일종의 암호였고, 그 암호를 통해 백씨를 조종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는 전화를 통해 다음에 그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위증 진술서에는 무슨 말을 써야 하는지까지 그녀에게 암호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가, 이걸 상상이나 했을까!!!! 암호라니....
뒤이어 나오는 내용들은 충격 그 자체였다. 둘 사이에 몸종계약서가 있었고, 다른 피해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알고보니 신씨는 부인과 이혼을 안했던 상태였고... 등등 몰아치는 내용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였다.
그녀는 그에게 세뇌당한 상태로 보였다. 그녀는 그에게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에게 조종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건 법원에 위증 진술서를 내러 갔을 때, 판사가 그녀의 상태를 직감하고 그녀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기 때문이었다. 난 그 판사가 정말 대단한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선 있을 수도 없는 일...
사실, 세뇌를 당한 사람이 자력으로 어딘가에서 빠져나오긴 매우 어렵다. 꼭 종교만이 세뇌를 시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인간관계에서도 세뇌는 가능하다고 본다. 특히, 연인 사이에는 더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 사이의 긴밀함. 그 긴밀함이 상하관계로, 상하관계가 폭력으로, 세뇌로 변질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터.
지금 현재도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들... 이들이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도망갈 수 없다. 벗어날 곳이 없다. 사실은, 저 사람이 원래 저런 사람은 아닌데... 지금 잠시 힘들어서 그런 것뿐이다. 사실, 내 잘못 때문이다. 하는 생각들일 것이다. 어쩌면 별 대수롭지 않은 작은 세뇌가 모든 것의 시작일 지도 모른다.
예전에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각 가정마다 그 가정에 해당하는 상식이 있다.’
한때는 그 상식은 당연히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건 그 가정의 일이니까. 그리고 그 상식은 내가 생각하는 상식선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참 순진도 하지...
하지만 그 상식이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면 법이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집단에서 고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이 한 사람의 삶보다 중요하진 않다.
아직 재판의 결과가 나오기 전이고, 결론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하다. 그녀가 바라는 결과가 나온다 할지라도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그녀가... 자신이 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렸을 때 외면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 신씨의 사회적 영향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혹시 그때의 기억으로 그녀가 돌아갈 곳이 없다고 여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좀 아팠다.
미국에선 데이트 폭력과 가정폭력을 동일한 범죄로 본다고 한다. 결혼과 무관하게 폭력으로 길들여진 관계에 대해 엄격하게 대한다는 점. 이 원칙은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평균 7번 가해자에게 되돌아가고, 7번 이상 되돌아가면 살해된다는 통계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아직도 친고죄가 있는 우리나라를 생각한다면... 참 한숨 나오는 일이다.
그녀가 하루빨리 행복해지길 바란다.
오늘따라 행복이란 단어가 왜 이렇게 추상적으로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녀가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자신을 진정 사랑해 주는 사람들 곁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번 에피소드를 봤으면 한다. 글에는 다 쓰지 못한 이야기들이 더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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