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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Recipe/영화

그녀의 이상한 계획마저 사랑스러운 영화 <매기스 플랜 : Maggie's Plan>

by LifeRecipe 2020.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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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톡으로 수다를 떨던 중, 친구는 갑자기 생각난 듯 영화를 하나 추천했다.

 

 

 

 

그렇게 시작한 영화 <매기스 플랜>은 러닝타임 내내 날 웃게 만들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 영화를 이제사 알게 되었을꼬. 시나리오 한번 잘썼다. 연출 한번 잘했다. 연기? 너무 잘했다. 삼박자가 잘 맞는 영화였다. 좋은 영화가 남기는 여운은 언제나 기분 좋다.

 

 

 

 

영화가 끝내고 다시 시작된 톡. 수다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할 이야기가 많아지는 영화가 정말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쩜.. 영화의 모든 장면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우선, 영화를 안 본 분이라면 무조건 뒤로 가기 누르고 먼저 보고 오는 걸로 하자. 왜냐고? 스포 때문이냐고? 아니다. 당신과 수다가 떨고 싶어서다.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 수다를 끌어내는 작품이다. 매우, 매우 추천하는 바.

 

나의 옛 사수는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대본이 재밌는 경우는 많이 없어.

그냥 읽었을 때 재미없는 거 많아.

드라마는 연출이랑 연기가 살리는 거야."

 

한마디 추임새 정도 넣을 수 있었을 텐데. 뭔 고집이었는지 입을 꾹 다물고 술만 마셨던 나였다. 난 그녀의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돌아보니 참으로 요령 없었다. 그냥 아 그래요? 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렵다고. 하긴.. 돌아간다 해도 난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허허. 그만큼 난 내 믿음이 중요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말에 100% 공감하고 있으니. 

 

"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쁜 영화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나쁜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

 

허나 그랬던 나도 시류의 흐름을 보면서 한때 조금이나마 이 말을 의심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매기스 플랜’은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시나리오가 잘 된 영화는 영화를 보면서도 알 수 있다. 잘 쓰인 것은 티가 난다. 이 영화는 잘 쓰인 각본으로 시작한 작품이다. 모든 상황과 모든 캐릭터가 살아있다. 좋은 기반에서 시작했기에 이토록 탄탄하게 흘러가는 것이 가능했다고 본다. 게다가 발칙한 전개에 깜찍한 연기가 더해지니 어찌,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줄거리를 아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한 매기. 사랑은 멀어진 일이지만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접을 수 없다. 그녀는 고민 끝에 대학 동창에게 정자 기증을 부탁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즈음 교수이자 소설가 지망생인 존을 우연히 만나 급격하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유부남이었던 존은 가정을 깨고 매기에게 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변화하기 시작하고 매기는 이에 대처하기 위해 자신만의 플랜을 세운다.

 

 

동창에게 정자기증을 부탁하는 매기 
갑작스럽게 다가온 사랑

 

 

(여기서부터는 스포)

 

매기는 결혼을 하고도 가정에 충실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전부인과의 연락을 주고받는 존의 사랑을 의심한다. 그리고 매기는 존의 전부인의 출판기념회에 갔다가 오히려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존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전부인이란 생각을 한다. 전부인을 찾아가 존을 다시 데려가는 건 어떤지 묻는다. 

 

 

 

두 사람의 케미도 대단히 훌륭

 

 

상상도 못한 장면에서 정말 빵 터졌다. 이 이야기를 듣고 당황한 전처는 매기를 집에서 쫓아내지만 얼마 후 직접 찾아와 그 계획에 동참하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전부인과 남편의 재결합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지만... 친구의 입방정으로 결국 들통 난다.

 

 

내가 너 사고칠 줄 알았다... 임마... 

 

 

이게 끝이냐고? 놉. 어찌저찌 결국엔 존은 전처와 다시 재결합하게 되고, 뭔가 요상하게 두 가족은 서로 공존하게 된다.

 

 

당췌 이 상황 뭥미 싶은... 

 

 

마지막 장면이 압도적으로 좋았는데... 이에 대한 스포는 너무 중요해서 밝히지 않겠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이기도 했으니 꼭 영화를 감상해보길 권한다. 

 

...

 

생각해보면 내 인생은 한 번도 계획한 대로 흘러간 적이 없다. 지금 여기가 내 계획이었다고? 오 No... 매기가 정자 기증을 받기로 했다가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인생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김어준이 10여 년 전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신이 우리를 보면 웃을 겁니다.

쟤들이 계획이란 걸 세웠어

 

이 말을 들은 것이 10년 전이란 것이 문득 더 소름이기도 하다. 휴.

 

매기의 이상한 플랜은 결국 계획대로 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매기의 친구는 묻는다. “저 둘은 니 덕인지 운명인지 모르겠네” 이제 우주의 신비를 인정하고 남들에게 관심 끊겠다는 매기가 한 가지 깨달은 것처럼. 나도 깨달은 것이 있다.

 

결국. 다 순리대로 가는구나..

 

지금 내 삶이 내가 세운 계획은 아니지만, 결국 이렇게 가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지금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쩌면 이 모든 건, 나의 최선을 위해 가는 길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현재가 마음에 안 들었던 나였는데 지금이 앞으로의 최선으로 가는 길목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왠지 조금 행복해졌다.

 

잘하고 있다. 잘 하고 있다. 잘하고 있다.

순리대로 가고 있다.

 

대부분의 장면이 다 좋았지만 이 영화의 최고의 캐릭터 우리의 정자 기증자 ‘가이’가 나오는 씬은 너무 좋았다. 요즘 특히나 수(數)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그의 대사가 너무 와 닿았다.

 

 

 

 

 

가이는 캐릭터상 좀 찌질한 느낌이 뿜뿜한데 이 장면은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른다. 와, 멋져. 이런 소리 하는 남자면.... 좋지 아니한가. 이 장면 하나로 그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그가 멋있어진 만큼 매기의 남편 존은 어찌나 찌질한지... 친구들에게 “글 쓰는 남자 만나지 마”라고 말했던 지난날의 내가 떠올라 또 한 번 피식 웃었다. 존 역할을 맡은 에단 호크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찌질해 보이다니 그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이 장면에선 내가 좀 설렜다 ㅋㅋㅋ 

 

 

정자를 담아서 주기로 해놓고, 빈손으로 집으로 찾아온 가이는 정자가 아닌 작은 꽃송이를 내민다. 그리고 정자 컵을 안 가져 왔다고 말하는 그에게 매기가 새 컵을 주자 우물쭈물하더니 전통적 방식으로 해보면 어떠냐고 하는데... 이 장면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빵 터졌다.. 한번 해볼 생각으로 온 것이 뻔한 그가 어쭙잖은 수작이 아닌 귀여운 꽃을 내미는 장면은 너무 사랑스럽지 않은가! 가이에게 그건 아닌 것 같다며 선을 긋는 매기. 친구와의 톡에서 “매기뇬 냉정하네” 라고 말하며 엄청 웃었다. 오히려 이런 전사가 있어서 마지막 장면이 더 가슴이 뀨~ 하는 느낌으로 끝났는지도 모른다.

 

줄리안 무어의 전처 연기는 그야말로 명불허전. 매기와 그녀의 연대감은 묘하게 이해되기도 했다. 그녀가 존의 소설을 모두 불태워서 지퍼백에 담아 넘기는 장면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영화가 끝난 이후, 매기의 삶이 궁금해졌다. 지금도 그녀의 삶은 순리대로 가고 있을까. 어떤 흐름으로 가고 있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녀가 행복할 것이란 사실. 질 수 없다. 나도 행복해질 테니까.

 

좋은 영화가 남긴 기운은 오래간다. 이 좋은 기운에 친구가 영화 추천을 하나 더 얹었다. 왠지 부자가 된 느낌이다. 이 다음 영화도 글로 남길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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